꼰대
영국의 국영방송인 BBC에서 화제가 되는 말을 word of the day로 선정하여 발표를 하는데요, 2019년 9월 23일에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 '꼰대(Kkondae)'가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아래 이미지에 친절하게 붙어있는 설명을 보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은 늘 옳고, 다른 사람은 항상 틀렸다고 믿는 나이 든 사람. 한 때 Latte is horse라는 유행어도 있었는데, 제가 쓰는 이 글도 그런 맥락의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쿨하게 인정하자면 저도 어쩔 수 없이 꼰대이니까.
교습소의 괄목할만한 성장, 비결은 오랜 기간 바닥부터 탄탄히 다져진 전문성
아내가 운영하는 교습소가 코로나 시국을 정면으로 관통하는 와중에도 엄청난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데,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을 초과하여 신규 원생을 받기 위해서는 퇴원생이 나올 때까지 대기를 고려하여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학생들이 등교를 하지 않았던 꽤 오랜 기간이 있었고, 학원이나 교습소는 교육부의 권고로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재차 2차 웨이브의 충격이 덮쳤을 때에는 수도권 교습소에 집합제한명령까지 내려왔었죠. 이런 와중에 많은 곳들이 폐업을 하거나 경영난에 시달렸는데 아내의 교습소는 오히려 괄목할만한 성장이라니, 실로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맛집 앞에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듯이, 아내에게 수업을 듣기 위해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줄을 서 있는 형국. 완벽한 백수로 지내고 있는 제가 옆에서 유심히 지켜본 바, 그 비결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다 알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이유로,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 것, 바로 제일 바닥부터 시작해서 전문성을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다른 사람의 노하우를 비용을 주고 사는 것으로는 절대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냥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으로도 이룰 수가 없죠. 이것은 비단 아내의 교습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업도, 장사도 마찬가지고 회사생활도 마찬가지죠. 하루아침에 뚝딱 일확천금을 만들 수는 없다는 단순한 진리입니다.
아내는 오랜 기간 강사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대형 입시학원부터 개인교습까지 아우르면서 축적된 많은 노하우와 시스템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이 누적되어 있지 않으면 프랜차이즈 가맹이나 비용을 투자하여 교재, 교보재, 자료를 구입하는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다른 사람의 노하우를 비용을 지불하고 빌려서 재판매하는 형식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투자금이 많이 필요하거나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식당을 운영해 보았지만, 식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유통이든 제조든 서비스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비용을 들여서 남의 노하우를 사야 하는데, 이런 경우에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당시에 저도 매일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생선을 사 오고, 채소도 직접 사 왔고, 직접 레시피를 개발해서 음식을 만들고, 포장이든 매장에서의 식사든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특정 프랜차이즈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예를 드는 것은 어려운데, 프랜차이즈에 가맹하면 해당 업체에서 제공하는 식자재를 사용해야 하고, 인테리어도 제휴된 업체에 맡겨야 하며, 여러 가지로 운용의 폭이 제한이 되죠. 물론 전체적인 큰 틀 안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되니 운영 자체는 큰 고민을 하지 않고도 편하게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대가로 수익을 분배하여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큰 자본 투자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만족할만한 수익을 얻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원리가 작동됩니다. 오랜 기간 많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 누적되어 이루어지는 전문성.
단순한 일만 반복하게 되는 사회 초년병들
제가 처음에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고, 첫 회사에 입사하였을 때 아주 인상 깊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핵심 부서의 부장님이 해주신 이야기인데요, 그 부장님이 회사에 처음 입사하였을 때는 신입사원이 출근해서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는 게 대부분 '복사'였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전자문서로 모든 것이 해결이 되고, 종이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타이핑을 하고 출력을 한 다음 필요한 수량만큼 복사를 하고 정성스레 제본을 뜨거나 철을 하는 것이 결재문서나 보고서를 생산해내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단순한 일이 반복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죠. 당연히 이런 일은 신입사원들이 주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불평불만을 쏟아내게 되지요. 내가 복사하러 여기 들어왔나. 복사기 앞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부장님은 복사기가 돌아가는 그 시간에 복사하는 문서를 하나하나 읽었다고 하더군요. 막상 나중에 조금씩 업무가 분장되어 실무를 맡기 시작하였을 때 어떤 차이가 생길까요.
저 역시 신입사원일 때 연구소 내에 외국인 기술고문이 계셨는데, 매일 파일롯에서 뭐라도 하나 해보겠다고 샘플을 뒤지고 몸을 쓰며 고전하는 사회 초년병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저를 종종 개인적인 술자리에 초대하곤 하였습니다. 그분 역시 저에게 늘 하시던 말씀이 '네가 지금 하는 일이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도 그런 일부터 시작해서 밑바닥부터 다지고 올라가야 한다.'였습니다.
Everyone has a plan, untu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주둥이를 한 방 쳐맞기 전에는.
- Michael Gerard Tyson -
어떻게 접근하냐가 큰 차이를 만든다.
직장 생활을 십수 년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직급도 올라가고 직책이라는 것이 생기면 자신의 하위에 리포트 라인이 생기기 마련인데, 걔 중에는 쓴소리나 잔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랬는데, 그 쓴소리나 잔소리가 위와 같은 성격의 것들이었죠. 단순하지만 다소 진부한 이야기. 이러저러한 일이 왜 이렇게 되고,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냐 류의 말들.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런 것이 없이 바로 어떤 경지에 올라설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불편한 기색을 보이거나 한귀로 듣고 흘리는 사람에게는 말을 아끼고 입을 닫았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꼰대라는 평을 듣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내가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
어느 책을 보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 하더군요. 매일 3시간씩이라면 약 10년, 하루 10시간씩이라면 대략 3년에 해당되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입니다. 저도 워라밸이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그 자체가 참 합리적이기도 하고,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 정시퇴근은 저도 권장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다만, 그것은 근무 시간 내에 콤팩트 하게 일을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 것이겠죠.
이건 위아래로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인데, 시대가 변한 것도 당연히 알고 있고, 십수 년을 사이에 두고 무언가 가치관의 차이가 있는 부분들은 충분히 체감하면서 이해는 합니다만, 일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고 느꼈을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회사에 출근해서 시간만 그저 흘려보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써놓고 보니 너무 꼰대스러운 말이네요. 하여튼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은 모두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성과는 분배한다는 것입니다. 주니어든 시니어든 발만 담그어 두고 성과는 같이 누리려고 하는 무임승차는 참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혹시 오해가 있을까 첨언하자면 일을 잘한다, 못한다같은 업무 역량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일이라는 것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어떤 일을 할 때의 태도랄까, 접근하는 방식의 차이를 말하고 싶은데 표현하기가 쉽지가 않네요.
하지만, 하루 종일 복사만 하는 사람이 복사기 앞에서 시간을 그냥 때우기보다는 복사하는 문서는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서 읽어도 보고 왜 이렇게 했을까 생각도 해보는 사람과는 나중에 큰 차이가 생깁니다. 이게 나중에 어떤 결과로 돌아왔을지는 누구나 짐작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인턴에 보면 로버트 드니로의 cover-letter video에 아래와 같은 대사가 나옵니다.
The tech stuff might take a bit to figure out. I had to call my 9-year-old grandson just to find out what a USB connector was. But I'll get there. Eager to learn.
기술적인 것들은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가 있습니다. 아홉 살 난 손자에게 USB가 뭔지 물어봐야 했거든요.
하지만, 배울 겁니다. 배우고 싶고요.
누구나 결국은 꼰대가 된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대로 꼰대라는 말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이 됩니다. 무조건 자신이 옳고 너는 틀렸다는 사전적 정의만 보아도 그렇지요. 그리고, 누군가를 꼰대라는 틀에 가둬버리면 그것만으로도 편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가끔은 리더로서 불가피하게 해야만 하는 말이 있고, 일이 있다는 것, 흔히 말하는 꼰대에게도 입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 본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을 꼰대라고 평하기 전에, 왜 그런지 입장을 조금 이해해 본다면 나름 좋은 조언과 경험들을 물려받을 수도 있고요. 멘토와 꼰대는 한 끗 차이가 아닐까요. 모두가 꼰대는 아닐 겁니다. 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가르치려고만 드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와 함께 그 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결과에 대해서 함께 책임을 져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꼰대라고 생각한 사람들 중에 벤같은 어른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 글은 꼰대를 위한 변명도 아니고, 어설프기 그지없는 글솜씨를 가지고 꼰대 예찬론을 펴려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시대가 많이 변했고, 점점 더 그 속도는 빨라지고 있으며, 그저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결국에는 누구나 꼰대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제 생각에는 꼰대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일은 그다지 없을 겁니다. 다만 '나는 꼰대가 아니야'라는 확신을 가지면 문제가 되겠죠. 왜냐하면 저것은 명백한 착각이고 자기 합리화이니까요. 결국에는 누구나 꼰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세월이 지나면 기성세대가 됩니다. 자식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을 부모님은 없을 겁니다. 동생이나 아끼는 후배가 실수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이나 선배도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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