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직장을 작년의 11월 말일까지 근무를 하고 퇴사를 하였으니 이번 달이면 이제 회사를 다니지 않은지 1년이 됩니다. 남이 만들어둔 환경에서 일하지 않고 혼자서 수익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노라 호기로운 마음으로 식당을 운영하였으나, 초보 자영업자의 시행착오들을 겪고 결국 폐업까지 한 사실이 불과 몇 개월 지나지도 않았는데 무언가 아득한 과거의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일을 돌아보면 마치 회사를 그만두고 보낸 시간이 수년은 족히 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되네요. 퇴사를 한 것이 고작 1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일들이 있어서였던 탓일 겁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장면들처럼 다른 세계를 여행하고 온 기분이군요. 밀러 행성에서 1년이 지구에서의 7년과 동일하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처럼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니까요.
잡스가 워즈니악과 처음에 창업을 할 때 잡스의 집에 딸린 차고에서 했다고 하죠. 제프 베조스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의 집에 딸린 차고에서 아마존을 시작했습니다. 그뿐인가요,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HP의 휴렛과 패커드도, 디즈니도 모두 차고에서 창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창업을 하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일구어내기 위한 필수 조건은 바로 차고가 딸린 집입니다. 저도 식당이 딸린 건물을 먼저 사고 식당 창업을 했어야 하는 건데..
농담이고요, 나이가 들면 외곽 지역에서 거주와 식당을 한 건물에서 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하여튼 그렇다면 상가가 딸려있는 집을 사야 되겠죠. 그런 일이 정말 이루어진다면 그때가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직장생활을 좀 더 하는 것으로 다시 가닥을 잡았습니다. 이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길을 이탈하였다가 다시 임금 근로자로 돌아갑니다.
소비패턴의 변화
퇴사를 하고 나서 창업과 폐업을 겪으면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다면 소비 패턴이 어느 정도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내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조금은 위축이 되었고, 특히 폐업 후에는 시간이 많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예전에는 돈을 주고 시간을 아끼던 것을 시간을 들여서 돈을 아끼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쇼핑에 특화된 여러 금액권을 저렴하게 구매한 다음 충전해서 사용하는 일들, 자동차 엔진오일을 온라인으로 구매해서 공임만 들여서 교환한다던가 에어컨 필터 역시 온라인으로 구매해서 직접 교체를 한다던가 말이죠. 그리고, 막상 해보니 전혀 어렵지가 않았습니다. 또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않아도 되더군요. 필요한 것은 아주 조금의 관심뿐입니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시간이 없었다기보다는 그냥 그런 일에 대해 알아보고 신경을 쓰는 것이 귀찮았던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이런 일은 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나 싶군요. 여전히 신중하게 소비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름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습관은 생긴 것 같습니다. 최근의 1년은 여러 가지 값진 교훈을 남겼는데, 소비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있게 된 것이 그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인생은 타이밍
서치펌을 통해 어떤 기업으로부터 해외 주재원 근무에 대한 인터뷰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 시점이 대략 제가 폐업을 하던 시기와 약간 오버랩이 되면서 맞물렸기 때문에 어떻게 이런 타이밍에 이런 기회가 온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더랬지요. 그리고, 4개월 가까운 기간에 걸쳐 무려 5번의 인터뷰와 전 직장의 동료와 상사들 여러 명에게 원치 않는 평판조회까지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많은 인터뷰와 정보를 취합하고 있는 데다가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그쪽 말로는 저를 채용하는 건에 대해서 내부에서 논의가 많다고 하더군요. 무엇이 그렇게 검토할 것이 많은지 경력 하나하나를 모두 검증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10월 말에 한 번의 인터뷰를 더 요청받았는데 조금씩 기분이 나빠지고 있던 시점이라 처음에는 거절하였습니다만 해외에서 매니지먼트가 방문하여 하는 마지막 인터뷰라는 말에 결국 수락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최종 인터뷰를 하고 난 다음에 피드백이 없이 3주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오퍼 레터를 받게 되었는데, 여러 베네핏들이 사실 한국에서 근무한다면 받지 못할 아주 좋은 조건이었긴 합니다만, 다음 날 거절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 기업에서 저를 두고 많은 숙고의 시간을 보내는 그 시간 동안 다른 기업에서 저를 채용하였고, 저는 마음의 결정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회사도 저도 서로가 많은 시간을 낭비한 셈이 된 것입니다. 제가 가기로 한 회사는 이력서 제출과 인터뷰, 그리고 합격 통지까지 단 이틀이 소요되었습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하던가요. 어찌 되었든 다시 직장 생활을 해외에서 시작한다는 어설프게 들뜬 마음에 여러 가지 따져보지도 않고 불쑥 해외로 갔을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었을 텐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야 될 것 같습니다.
다시 임금 근로자로.
아내나 형제들, 친구들이 많은 조언을 해주었는데, 제가 다시 회사원으로 돌아가는 선택에도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다른 선택을 했어도 그랬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갑니다. 지금 마음으로는 일단 여기서 좀 오래 다니자는 생각이 가득합니다만, 여기가 마지막 직장이 될지, 이 곳을 거쳐서 또 다른 직장으로 가게 될지, 또 창업에 도전하게 될지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겠죠.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걸어가는 거죠.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것을 이루거나 성취한 사람들을 보면서 아주 오래전부터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차근차근 그 목표를 향해서 전진하였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예전의 어느 설문조사에서는 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CEO나 중역들이 미래를 내다보고 장기적인 플랜을 세우면서 일을 하는 비율이 생각보다(?) 현저히 낮다고 하더군요. 그들의 대다수가 하는 말이 대충 요약하자면 '나중은 잘 모르겠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입니다. 그냥 이런저런 계산 없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작고한 천재 가수가 그렇게 노랫말로 이야기했습니다. 순간과 순간이 모이는 것이 삶이라고요. 제가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말이기 때문에 직장 후배들에게도 현재에 충실하라고 말을 많이 했습니다. 평범하면서도 단순한 생활의 진리가 아닌가 합니다.
덧 1. 이제 이 블로그의 이름을 바꾸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코로나19가 다시 확산세로 접어드는 듯합니다. 모두에게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덧 2. 숀 코네리의 부음이 있었습니다. 작품 활동이 조금 뜸하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007의 소식을 듣고는 그와 1930년생으로 동년배인 이스트우드 감독이 생각이 났습니다. 재수 없는 소리이지만 필모의 현재 마지막 작품이 유작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용서받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영화들, 계속 보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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