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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2020년의 끝자락에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by JCSPIRIT 2020.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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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개인적인 입장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정치나 경제 등의 측면으로 보더라도 정말로 다사다난했던 2020년이 어느덧 며칠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올해의 최대 이슈는 뭐니 뭐니 해도 코로나19라는 새로운 감염병의 확산이 있었죠. 지금도 현재 진행이고요. 아마 어떤 세대에게는 지금까지의 삶을 통틀어 단연코 가장 큰 사회적인 변화가 촉발된 사건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 벌어지건 간에 늘 그랬듯 한 해가 마무리되고 새 해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연도라는 표기 방법이 시간 흐름을 인지하기 위한 편의상의 구분일 뿐이지만, 그렇더라도 어느 시점에는 잠시 멈춰서 나름의 정리와 함께 일단락이 된 일들을 되돌아보는 것이 다가올 날들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될 테고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 스포일러가 일부 있으니,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넷플릭스에 있으니,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께는 추천합니다.)

2017년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영문 제목을 보면 'One cut of the dead'라고 되어 있는데요, 영화의 시작은 무려 37분이라는 원테이크로 진행이 됩니다. 원테이크라는 것은 단 한 번의 컷으로 촬영이 된 것이고, 보통 3-4분 정도의 테이크를 롱테이크라고 하는데, 무려 37분의 원테이크입니다. 엄청나죠.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Ueda Shinichiro, 2017, 스틸컷 출처: 다음 영화 -

 

그런데, 이 영화의 초반부 롱테이크를 보면 아카데미 촬영상에 빛나는 버드맨의 롱테이크 같은 수준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건 흡사 TV 방송이었다면 방송 사고에 가깝더군요. '아니, 이건 경험이 비루한 감독의 치기 어린 졸작이 우연찮게 개봉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가 허접한데, 이 처음의 허술하고도 엉성하기 그지없는 롱테이크가 지나고 나면, 비로소 왜 이 영화의 시작이 이랬던 것인가 의문이 풀립니다.

어설프고 준비가 되지 않은 배우들, 터무니없는 리허설, 급조된 출연진, 여러 돌발 상황이 발생하고 어이없는 현장. 이 속에서 감독은 절대 카메라를 멈추지 않죠. 형편없는 퀄리티일지라도 어찌 되었든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일념 하에 최초에 의도되었던 원테이크로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꿋꿋하게 촬영해 나갑니다. 그리고, 많은 우여곡절에도 결국은 나름의 완성도를 가진(?) 영화를 만들어내지요.

 

말도 안 되는, 일반적인 영화라면 당연히 사용할 수 없는 컷들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보면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애초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다시피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과물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감독은 카메라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영화는 완성시켜야 하니까요. 마치 우리의 삶처럼 말입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던 식당 운영. 그리고 창업과 폐업.

저는 작년 11월 말까지 직장 생활을 하고 퇴사를 하였습니다. 누군가로부터는 미친 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당시 제 생각은 확고하였는데, 더 이상 조직 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혼자서 일하고, 혼자서 수익을 내든 손실을 내든 모든 것이 내 책임이 되는 업을 가지고 싶었는데, 그때는 두 번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번아웃을 경험하기도 했고, 조직에 대한 염증과 약간의 환멸, 그리고 명함이 없으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 등. 생각보다는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 포기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아내의 이해와 형제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결정이었습니다. 모두가 부모님께 비밀을 잘 지켜주었습니다. (ㅋ) 그리고 준비 끝에 개업을 하였죠.

 

 

- 개업하였던 식당에서.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행복했다. -

 

 

하지만, 영업을 지속하면서 생각대로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고 이대로는 만족할만한 수익을 얻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고민 끝에 폐업을 하였습니다. 어느 친구의 말처럼 애당초 말도 안 되는 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빠른 결정으로 얻은 것 역시 많았고, 나름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고 자부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재창업이냐 취업이냐의 갈림길에서 다시는 조직 생활을 하지 않겠다던 생각과는 달리 임금근로자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애초의 계획과는 모든 것이 달라져버린 것이죠. 저의 2020년은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었으며, 의도하였던 일들도 이루어지지 않았을뿐더러, 금전적인 측면으로만 보았을 때 기회비용으로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되돌아보니 참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도 원테이크

2020년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면 많은 목표와 계획을 세웠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돌이켜보니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고, 가히 스펙터클한 한 해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심지어 금연조차 실패하고 폐업을 하면서 다시 흡연자가 되었습니다. 비단 올해뿐일까요. 그리고, 이런 사람이 저뿐일까요.

 

살다 보면 어김없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주하게 되고,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를 하여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많은 변수들이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뭔가 잘 되는 듯하다가도 실수가 생기고, 목표나 계획을 급히 수정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죠. 어느 것도 뜻대로 되지 않고,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어느 누구에게는 길게 흐르고, 어느 누구에게는 짧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흘러갑니다. 다른 중력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렇다면 결국에는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어느 가수는 담배를 끊으라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고마운 삶의 의미라고 노랫말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그저 자신의 생각대로 가벼운 걸음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힘을 조금 빼고 가벼운 걸음을 내딛으면 됩니다. 물론 2021년이 되면 또 새로운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아마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 투성이일 테지만, 어떤 결과물이든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각자의 삶을 어떻게든, 어떤 모습이든 멈추지 않고 완성시켜나가야 하니까. 각자의 노력과 주변에 가득한 고마운 삶의 의미들이 거기에 녹아 있으니까. 비록 형편없어 보일지라도 카메라를 멈추면 안 된다는 감독의 일념으로 제작된 원테이크 영화가 그 나름의 의미를 가졌듯이, 우리의 삶도 멈춰서는 안 되는 원테이크이니까요.

 

지나간 한 해를 되돌아보며, 그리고 모두에게 행복한 새 해가 되기를 기원하면서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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