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계절이 왔습니다. 작년에는 이 시기에 식당을 창업했었는데, 지금은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영업사원의 길을 걷고 있네요. 덕분에 요즘은 길의 좌우로 아름답게 만개한 꽃들 속을 운전하면서 지나갈 때마다 또 다른 즐거움이 가득합니다. 정말 멋지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지긋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감상에 젖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 전 벚꽃은 일본의 국화가 아니냐, 일본의 잔재가 아니냐 하는 이야기를 출근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의도치 않게 듣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벚꽃이라고 하면 일본이 연상되기 때문일 터,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꽃놀이가 못마땅하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나, 사실 관계는 정확하게 아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본의 국화는 벚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화(國花)는 무궁화입니다만, 일본의 국화는 무엇일까요? 일본 사람들이 벚꽃을 좋아하는 것은 굉장히 유명해서 벚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벚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먹는 하나미(花見, はなみ, 꽃놀이)를 즐기는 것이 일본인들에게는 일종의 연례행사 같은 일이니 말이죠. 일시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질 때는 또 한 순간에 져버리는 그 모습이 마치 사무라이의 인생을 비유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 번의 칼놀림에 인생을 건다는 사무라이와 일시에 피었다가 순식간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잎. 톰 크루즈가 출연하였던 라스트 사무라이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나네요.
하지만 벚꽃이 일본을 대표하는 꽃일 수는 있으나, 일본의 국화(國花)가 아닙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국화는 없지만, 굳이 꼽자면 벚꽃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겠으나, 국화(菊)일 수도 있겠죠. 일본 황실의 문장(紋章)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한 때 일본 관련된 서적으로는 미국의 인류학자였던 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가 쓴 '국화와 칼(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이라는 아주 유명한 책도 있고요.
벚꽃의 원산지는 품종에 따라서 우리나라
우리가 요즈음 감상하는 벚꽃의 원산지는 일본이 아닌가 생각이 들 수가 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품종에 따라 우리나라일 수도 일본일 수도 있다입니다. 그리고, 원산지가 제주도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만,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해 볼 필요는 있는 바, 학술 검색을 해보았더니, 아래 논문이 검색이 됩니다. Genome Biology라는 학술지에 실린 article인데 가천대와 명지대의 연구팀이 저자입니다. 원문도 검색으로 볼 수 있습니다. (Prunus가 벚나무속입니다.)
결론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왕벚나무와 일본의 왕벚나무는 서로 유전적으로 다른 식물임을 유전체 분석 결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의 왕벚나무는 다르고, 우리가 봄철에 즐기는 벚꽃은 일본 품종도 있지만, 우리나라 원산지의 벚꽃, 제주 왕벚꽃이 있는 것입니다. 여의도나 경남 진해의 벚나무들은 일본의 종이긴 합니다만.
하지만, 최소한 제주의 왕벚나무는 일본에서 그 유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자생종이라는 것이겠지요. 물론 일본의 벚나무도 제주도가 그 기원이 아닌 것입니다.
참고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화피(樺皮, 벚나무 껍질)로 검색해보면 평안도나 함길도에서 바치던 공물인 내용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활을 만드는 군수물자였기 때문인데요, 충무공의 난중일기에도 나오죠. 팔만대장경도 무려 60% 이상이 벚나무로 제작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상대(?)가 일본이다 보니 이 좋은 계절에 원산지가 어디냐 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만, 꽃놀이를 즐김에 있어서, 굳이 원산지를 따질 필요는 없겠지요. 위에도 언급하였다시피 유명한 여의도나 진해의 벚나무가 일본 종이긴 합니다만, 정확한 사실관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그냥 계절이 주는 화려함을 만끽하면 될 것 같습니다. 비가 갑자기 내려 꽃잎이 많이 떨어졌지만, 저도 그저 이 꽃들을 바라보며 길을 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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