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시들해졌으나 한 때 영화에 굉장히 심취하였던 십수 년의 시절이 있었는데, 다른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감상한 것은 제외하고 극장에 간 횟수만 평균을 내자면 일 년에 대략 50번 - 60번 정도 극장에 갔던 듯합니다. 거의 매주 간 셈인데, 영화가 개봉하는 날이면 퇴근 후에 항상 극장으로 가던 그 시절. 일상을 벗어나 오롯이 영화에만 집중하는 시간과 공간. 그냥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참 좋았고, 영화를 보고 나서 여운을 가지고 내용을 곱씹으며 집으로 가는 그 시간이 좋았으며, OST를 또 따로 찾아 듣는 것이 좋았습니다.
(극장이라는 단어보다 영화관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왠지 극장이라는 단어가 더 좋아서 그대로 사용합니다.)
코로나 19라는 미증유의 사태 이후에 극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꽤나 줄었지만, 여전히 가끔씩은 극장에 갑니다. 근데, 텅 빈 좌석들을 바라보면 기분이 참 미묘하죠. 얼마 전에도 극장에 갔는데, 뒤늦게 두 명의 관객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혼자서 상영관을 전세 낼 뻔했습니다. 거리두기로 가용할 수 있는 좌석들이 줄긴 했으나, 거리두기가 사실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관객이 거의 없으니까. 극장을 운영하는 기업들이 버틸 수가 있을까 염려(?)도 됩니다. 이렇게 계속 침체가 지속된다면 힘들 텐데. 극장은 이대로 사라져 가게 될까.
참고로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웹사이트에 가보면 2021년 현재 기준으로 총 관객수가 1,154만 명 정도 됩니다. 이제 5월이지만 고작 1,154만 명. 2020년은 총 관객수가 대략 6천만 명 정도였고요. 한 때 천만 관객 영화가 일 년에 두세 편이 나오던 때도 있었는데, 2억 명을 웃돌던 관객수가 이제 흥행작 두어 편의 관객수보다 적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엑셀에 데이터를 그려보니 마치 절벽 같은 급락이 눈으로 보입니다.
극장이 점차 쇠퇴하는 모양새이고, OTT 서비스가 대세가 되어가는 시대이니만큼 저도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작년부터 이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개봉할 당시였는데, 왜냐하면 멀티플렉스들은 상영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었죠. 아마 극장의 입장에서는 넷플릭스라는 경쟁자에게 선뜻 자리를 내주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뭐라도 해야 되었을 테죠. 무엇이든.
결국은 저 역시 넷플릭스를 통해서 개봉하는 영화들이 생기게 되면서 하게 된 선택인 셈인데, 디즈니 플러스나 HBO 맥스 역시 사용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해당 플랫폼에서만 상영이 된다면 이용을 해야죠. 하지만 무언가 마음 한편이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영화라는 콘텐츠 그 자체와는 별개로 극장이라는 것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이 있기 때문일 테죠.
아마도,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에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라는 것이, 사실 영화관이 아닌 시민회관이었고 실사영화가 아닌 만화영화였지만, 스페이스 간담 V 였던 듯합니다. 그 뒤로 다른 만화영화들 몇 편과 우뢰매 시리즈도 보았고요. 김청기 감독님의 로봇 애니메이션, 우뢰매 같은 특촬물을 시민회관에서 보았던 기억들. 어머니께서는 늘 우리 형제들의 손을 잡아 이끌고 시내버스를 탔었는데, 그렇게 도착한 시민회관의 매표소에서 본인의 표는 끊지 않으셨습니다. 아이들만 자리에 착석시키고 나오겠다고 입구에 설명하시고 우리의 손을 이끌고 들어가셔서 끝나면 곧장 앞으로 나오라는 당부와 함께 상영이 끝날 때까지 입구에서 기다리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지루하셨을지. 그때 아직 어리기만 하였던 우리 형제들이 재미있게 만화영화를 보던, 그 시간 너머로 어머니의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 함께 흐르고 있었습니다.
멀티플렉스가 들어서기 전 단관 개봉을 하던 그때, 터미네이터 2가 내걸린 극장의 매표소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학원을 다녀오던 버스 안에서 보았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정말 길게 늘어서 있던 줄. 이제 갓 중학생이 된 제가 쥬라기 공원을 보겠노라 아침 8시부터 극장 앞에 친구와 함께 줄을 섰던 것도요. 그때부터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훌쩍 지나는 새, 그 어린 학생은 중년으로 접어드는 아저씨가 되었고, 그 사이 극장가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일등이라며 시시덕거리던 그때. 그때는 지금처럼 온라인 예매라는 것이 없었으니 매표소 앞에 줄을 서는 일이 흔했습니다. 어찌 보면 불편한 일이었으나 그 나름의 운치(?)랄까 그런 것도 있었던 듯합니다. 줄을 서서 매진이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영화에 대한 기대를 잔뜩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이 말이죠. 간혹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줄을 선 사람들이 묻기도 했었고요. 영화 재밌나요?
당시 한 달 용돈을 2천 원, 3천 원, 이렇게 받던 학생이었는데 어머니께서는 영화를 보러 가고 싶다고 하면 선뜻 만원을 내어주셨습니다. 저 때 만원을 들고나가면 영화를 한 편 보고, 경양식 돈까스를 먹고 돌아와도 돈이 남았습니다. 영화를 두 편 보고 싶으면 경양식 돈까스를 포기하고 짜장면을 먹으면 그것 역시 만원 안에서 해결이 가능했는데. 돈까스를 먹을 것인가, 짜장면을 먹고 영화를 한 편 더 볼 것인가, 아니면 영화만 보고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고민하던 그때. 아, 정말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참 소중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영화관이라는 단성사에 한때 1,000원이라는 아주 저렴한 관람료와 함께 무려 아침 8시에 상영이 시작되는 조조 전의 상영 회차가 있었어요. 학부생 시절, 금요일 밤이면 버스를 타고 동대문의 극장으로 가서 심야 영화를 보고, 늘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자취방으로 돌아오던 기억. 심야영화가 표가 더 저렴했거든요. 예전에 스타식스 정동극장에 가면 밤 11시부터 아침 7시 정도까지 개봉작 세편을 연달아서 상영하였습니다. 아마 만원인가, 만 2천 원이었을 겁니다. 저 같은 학생에게는 정말 보석 같은 극장의 심야영화였었는데. 저렴한 영화비로 위로받던 그 시절. 영화롭던(?) 그 시간들.
시대는 변했고, 사람들의 생활양식도 많이 변했습니다. 극장은 이대로 사라지게 될까. 어떻게 될까.
참고로, 한 시상식에서 거장 스필버그가 아래와 같은 말을 해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던 바 있습니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던 않던 누구나 이에 대해 한번 정도는 생각해 볼 여지는 있겠습니다.
I hope all of us really continue to believe that the greatest contributions we can make as filmmakers is to give audiences the motion picture theatrical(!!) experience.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공헌은 바로 관객들에게 극장에서의 관람 경험을 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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