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자영업자의 퇴사 후 식당 창업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다수의 기업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자영업, 특히 식당들도 가격 압박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격 파괴 수준의 제품이나 서비스들도 심심찮게 볼 수가 있고요. 저 역시도 연구원 시절에 신제품을 개발하는 일들도 많이 하였지만, 기존 제품의 원가를 절감하는 조성을 개발하거나 공정 비용을 낮추는 연구도 많이 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원가를 절감하면 그대로 수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정된 오픈일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제가 판매하는 메뉴들의 가격을 어떻게 결정하였는지를 다루어봅니다. 이전에 다른 포스팅에서 가격 결정에 대한 논리를 약간 언급한 바 있습니다.
2020/03/28 - [식당 창업기] - 식당 창업_포장이나 배달 용기 선택
간단하게 요약하면 최종 가격은 원가에서 마진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소비자가 지불할 수 있는 가치를 고려해서 산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는데, 제가 생각하는 바를 자세하게 써볼까 합니다.
가격 결정 (Pricing) 에 실패하는 이유
제가 근무하였던 회사 중의 한 군데에서는 가격이 늘 이슈 중 하나였던 곳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해외의 관계사에서 원자재나 완제품을 수입한 다음 원자재면 임가공 업체에서 단순 가공을 하여 판매하고, 완제품이면 그대로 마진을 붙여서 판매하는 식이었는데, 해외 관계사에서 구매해올 때 이미 높은 가격인 데다가 로컬의 마진까지 붙이게 되니 가격경쟁력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고객사 연구원들에게 기술적으로 최대한의 지원을 하였는데, 가격 때문에 프로젝트 수주에 실패하는 경우가 더러 발생하면서 가격 결정, Pricing 과정이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고, 사내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회사에서는 R&D를 마치고 양산 전에 가격을 책정하는 전략이 특별히 없는 듯 보였고, (사실 있었겠지만 항상 마켓의 평균적인 가격과 갭이 컸던 것을 보면 수입하는 입장에서는 없는 거나 다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가격을 제품의 원가를 기준으로 산정하여 결정하였습니다. 이 제품의 원가가 얼마고, 수입하는 가격이 얼마인데다가 로컬의 관리비와 운송비나 임가공비, 인건비 같은 여러 비용들을 모두 반영한 다음 마진을 얼마를 붙일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원가를 계산한 다음, 경쟁 제품의 가격이나 여러 시장 동향을 고려해서 원가에 10%, 15%, 20% 붙이는 식입니다. 물론 케이스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경우가 이런 방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국내에 제조 기반을 갖추지 않은 외국계 회사의 특성상 직접 제품을 제조하지 않고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사실 제 기준에서는 비즈니스적으로 보았을 때 다소 황당하게까지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프로젝트를 가격 때문에 수주하지 못하는 이유가 결국에는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제품을 얼마 정도의 가격에 구매할 의향이 있는지를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격을 책정하는 전략이 항상 너무 후순위에 있었습니다. 약간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제품을 우선 만들고 가격을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해당 제품군에서 시장의 평균적인 가격보다 1.5배, 2배 비싼 제품을 내놓았을리가 없겠지요.
오해가 있을까 첨언하자면 이 부분은 한국 시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해외의 매니지먼트에서 가격 책정에 많은 관여를 하면서 종종 벌어지던 일로 당시의 세일즈 담당의 입장에서도 답답할 노릇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종 소비자가 만족스럽게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을 적정 가격으로 설정
원가 산정보다 우선해야 되는 것이 가격 설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얼마에 살 용의가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제공할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사람들은 얼마가 적정가격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지불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제가 식당을 창업하면서 임대료는 얼마고, 식자재가 총 얼마가 들어가고, 하루에 몇 시간을 일하는 내 인건비, 점포 관리비가 얼마니까 한 달에 어느 정도 팔렸을 때 얼마를 벌려면 가격은 이 정도는 받아야 된다는 식이면 장담하건대 운이 매우 좋지 않은 이상 팔리지 않습니다.
매우 당연하게도 소비자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최대한 저렴하게 구매하고 싶어합니다. 반면에 판매하는 쪽에서는 가능한 한 비싼 가격으로 팔고 싶겠죠. 하지만, 이러한 가격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 결정이 되기 마련입니다.
고객이 필요한 것, 가치를 두는 것, 그 가치를 제공할 때 얼마를 낼 용의가 있는지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다음, 산출된 그 적정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 저는 식자재의 가격을 검토하고, 적정 수준의 재고 관리도 하여야 하며, 조리 과정을 최적화시켜 여러 손실을 줄여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마진을 20프로 정도로 가져가는 것이 목표라면 적정 수준으로 판단되는 판매 가격의 나머지 80프로, 마진을 제외한 그 범위 안에서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제조 및 판매가 모두 해결되도록 고안해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가격 설정에 실수하여 지나치게 낮게 설정하면 이 역시 기회비용과 수익의 손실로 연결될 수가 있습니다. 적정 가격을 찾는 것이 그래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반드시 본인의 점포가 있는 상권과 잠재적인 구매층의 연령대, 성별 등 여러 가지를 연계해서 산정하여야 하겠습니다.
가격 결정과 관련된 영화, 뷰티풀 마인드 (2001) - 내시 균형 (Nash Equilibrium)
가격 결정과 관련된 영화를 한 편 소개합니다. 천재 수학자 존 내쉬 박사의 이야기를 담은 전기를 원작으로 한 론 하워드 연출, 러셀 크로우 주연의 2001년작 뷰티풀 마인드입니다.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비롯 4개 부문에서 수상하였습니다.
존 내시는 '내시균형'의 개념을 21세 때 쓴 논문에서 선보인 바 있는데, 기존의 게임이론에 대한 새로운 분석으로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합니다. 영화에서는 술집에서 금발의 미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신경전을 두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부분은 영화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존 내시는 내시 균형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I think he thinks that I think that he thinks that I think..."
"그가 생각하는 걸 나도 생각한다고 그가 생각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미리 내다보고 거기에 맞는 최선의 대응책을 모색하여 서로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상태가 내시 균형입니다.
내시 균형(Nash equilibrium)은 게임 이론에서 경쟁자 대응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면 서로가 자신의 선택을 바꾸지 않는 균형상태를 말한다. 상대방이 현재 전략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나 자신도 현재 전략을 바꿀 유인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게임이론에서 내시균형이란 두명이나 그 이상의 경기자들의 비협조적인 게임에서 각 경기자들이 다른 경기자들의 균형전략을 알고있다고 가정할 때 어떠한 경기자들도 자신의 전략을 바꾸지 않게 되는 비협조적인 게임에 관한 해결방식이다. 만약 각 경기자들이 자신의 전략을 고수하고 아무도 전략을 바꾸지 않는다면 현재의 전략선택은 내시균형에 부합하는 결과를 갖게된다. 간단히 말하면 Amy는 Phil의 결정이 변함이 없는 동안 Phil의 결정을 고려하여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적 선택을 하고, Phil 역시 Amy의 결정이 변함이 없는 동안 Amy의 전략을 고려하여 결정한다면 Amy와 Phil은 내시균형을 갖는다. 이와같이 한그룹의 경기자들은 그들이 다른 경기자들의 결정을 참고하여 내린 최적결정은 내시균형에 있다는 뜻이다.
- 위키백과, 내시 균형 항목에서 발췌 -
현실에서는 과점 시장에서 내시 균형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과점 시장에서 가격과 생산량이 결정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소수의 공급자는 서로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의 결정을 고려해서 자신의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이렇듯 시장의 참여자들이 상대방의 전략을 전제로 자신의 전략을 선택하는 균형 상태가 형성되는데, 이것이 바로 내시 균형입니다.
저도 현재 있는 상가에 저보다 한 달 빨리 오픈한 홀까지 갖춘 배달점포가 하나 있습니다. 취급하는 메뉴는 다르지만 어찌 보면 같은 업종에 있어 동일 상가 내 유일한 경쟁업체가 되겠군요. 게다가 이 상가에 두 군데 뿐이니 과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제가 곧 오픈할 예정인데 저쪽 업소에서 저와 유사한 메뉴를 추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픈하면 얼마를 받을지도 은근슬쩍 물어보고 갑니다. 당연히 여러 차별적인 요소를 만들어야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격적으로 두 가게가 서로 균형을 찾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가격도 책정되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처럼 작동이 될런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얼마간의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매출과 수익으로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처음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막연한 희망도 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서서히 자영업자로서 데뷔의 서막이 오르고 있는 느낌을 안고 열심히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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