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을 개업하고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를 맞이하였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한 건의 주문이 들어와도 엄청나게 바쁘게 움직이게 되더군요. 익숙하지 않아 그렇겠지요. 돈을 받고 음식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다 보니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래도 작은 실수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혼자서 운영하는데, 큰 사건 사고 없이 지나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검증되지 않은 이 곳에 용기를 내어 찾아오는 손님들께 고맙게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3학년의 겨울방학이었을 겁니다. 당시 면접이라는 것도 있긴 했지만 대학 입시의 사실상 마지막 과목이었던 논술을 치르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형은 이미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상경하여 나중에 제 모교가 될 학교의 공과대 후문 근처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저는 날짜가 다른 두 학교의 논술 시험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형의 하숙방에서 며칠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논술 시험이라는 것이 일종의 작문 시험이라 단기간에 공부를 한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시험을 치르는 날 이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보고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절도 아닌지라 고등학생이 낯선 서울에서 혼자서는 어딜 가볼 엄두도 나지 않아서 그저 형의 하숙방에서 PC로 삼국지와 영걸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친구와 영화 약속이 있는데 함께 가겠냐는 물음에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서 영화를 본다는 사실 만으로도 약간은 설레기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영화를 본 곳이 지금은 없어진 대학로의 '동숭 시네마텍'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숭 시네마텍은 예술영화 전용관이었고요. 상영한 영화는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The Draughtsman's Contract)'이었습니다. 그 당시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고는 하나 아직 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던 저의 눈에는 제목뿐만 아니라 포스터마저 이상하게만 보였는데, 심지어 그 해에 만든 영화도 아니고 당시보다 10년 이상 전인 1982년작이더군요.
영화가 시작되고, 뭔가 흐름이 다소 신기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나중에는 좀 황당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저도 나름 또래 중에서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에 속했는데, 유년 시절 우뢰매 같은 김청기 감독님의 작품들부터 시작해서 국민학생 시절에 백 투 더 퓨처에 열광하고 중학생 때 쥬라기 공원을 보기 위해 단관 개봉을 한 극장에 버스를 타고 가 매표소 앞에 아침 일찍 줄을 서던 저에게 저 영상물은 제가 알던 영화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류의 그 어떤 것이었지요. 그 때의 저에게는 악당이나 외계인, 괴수와 싸우고 무언가 폭발하고 터지고 때려 부수면서 결국에는 권선징악류의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그런 것이 영화인데 말입니다.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제목처럼 마치 미지와의 조우를 한 것 같았습니다.
내용도 전혀 이해를 못하겠고, 대체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따라가지도 못했습니다. 고개를 돌려 옆에 앉아 영화를 감상하고 있는 형을 바라보았습니다. 고등학교도 아직 졸업하지 않은 저를 데리고 와서 저 예술영화를 관람하던 형을요. 어느새 제 시선이 느껴졌는지 저를 보더니 형이 나지막이 뱉은 한 마디가 '그냥 자라, 자도 된다.'였습니다. 어차피 이해도 못할 테고 보아도 의미가 없을게다 라는 뜻이었겠지요. (참고로, 20세에 이런 영화를 보고 다니던 이 양반은 대학 시절 PC통신 나우누리의 모 영화 동호회 시삽이자, 제 모교 영화 동아리의 회장이 됩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보기 위해 이 극장 안을 메운 이 사람들은 대체 뭐하는 사람들인가, 이 극장 안에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이런 영화를 몰입해서 보는 것일까, 뭔가 내가 모르는 것들이 숨어 있는 것인가, 영화에는 도무지 집중하지 못하고 관객들에 대한 별 별 생각들을 하는 사이에 영화가 끝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갔습니다. 요즘처럼 여러 미디어에 쉽게 노출되고, 다양한 정보들을 쉽게 접하는 학생들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에, 저 영화를 관람한 것이 당시 깊이 각인되어서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저에게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입니다.
하지만, 영화 상영은 끝났음에도 저에게는 이 영화가 마치 끝내지 못한 숙제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영화 자체에 대한 궁금증도 컸지만, 상영관을 가득 메웠던 그 관객들이 도저히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그 관객들이, 당시의 저에게 영화도 아닌, 저런 영상물을 보기 위해 극장에 모여 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충격이었습니다. 결국에는 대학생이 된 다음에 뭔가 해갈되지 않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결국 나중에 다시 이 영화를 어렵게 찾아보고 이 장면은 어떤 의도인가, 음악이 어떻구나, 구도가 어떻구나 등을 생각해 보기 시작했죠. 나름의 조사와 함께 비평을 한 것입니다. 조사라고 해봤자 당시는 PC통신 시절이고,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접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 읽는 것뿐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를 감상하는 시야도 조금 달라지고 한 편을 보더라도 나름의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말입니다. 이 영화가 어찌 보면 계기가 된 셈입니다.
퇴사 후에 창업을 준비하면서 매일 운동을 한 다음 도서관에 갔다가 상권을 둘러보러 나가는 일상이 이어진 기간이 있었습니다. 체육관은 매일 오전이든 오후든 하루 종일 운동하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저는 처음에 체육관에 나갈 때 평일 오전이나 오후 시간이면 정말 한가할 줄 알았거든요. 시립 도서관에 가도 주차장이 항상 만차입니다. 도서관이 외진 곳에 있어서 주변에 용건이 있을 리가 만무한데 말이지요. 주차할 데가 없어서 이중주차를 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저는 도서관도 평일에는 정말 한가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번화가의 커피숍에 가서 노트북을 펴고 앉아 창 밖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삼삼오오 모여서 차를 마십니다. 그걸 보면서 평일 오전에도, 오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아마도 직장을 다니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떤 일을 할까, 어떻게 돈을 버는 걸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지요. 모두가 각자의 수입이 있고, 경제활동이 있을 겁니다. 예전의 제가 돈을 벌기 위해 사무실에 시간을 저당 잡혀 있는 동안 운동을 하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영화를 보면서 번화가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저 사람들도요.
직장 생활만 하던 저에게는 퇴사 후에 백수로 지내면서 보이는 평일의 풍경들이 이렇듯 낯설고 다소 놀랍게 보였습니다.
그저 제가 겪어보고 알고 있는 종류의 직업, 직장을 다니면서 조직을 위해 일을 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 직업, 평일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 쉬는, 뭔가 고정관념이랄까 틀에 갇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족들도,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였으니 더 시야가 좁아져 있었을지도요. 제 아내가 예전에 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현상이나 이슈를 대할 때 모든 것을 너무 회사를 다니는 사람 기준으로 생각을 한다.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야.'
나중에 경제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백수로 지내면서 확고해진 것은 더 이상 조직 생활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긴 시간을, 많은 노력을 회사를 위해 쓰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가, 지금 수익을 내는 방법이 이 방법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던 혼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하는 여러 생각들로 인해 퇴사를 결정한 것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을 보기 위해 극장을 가득 메웠던 그 관객들을 보았을 때가 떠오르더군요. 좀 과장한다면 제가 모르던 세상에 이미 당도해 있던 사람들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요식업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돌아가는지, 점포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어떤 설비를 어떻게 설치하여야 하는지, 어떤 맛을 어떤 재료로 어떻게 조리해서 내는 건지 물론 처음에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어렵다고 피하면 성취와 개척이라는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 중 하나에는 닿지 못합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당연히 리스크를 수반합니다. 게다가 쉽지가 않죠. 하지만,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 새로운 도전이 가져올 유익함은 엄청납니다. 늘 그렇듯이 할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일에는 노력과 어려움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어찌 보면 인생은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배워야 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런 식당을 창업하여 운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훗날 이 식당을 창업하면서 얻은 경험은 나중에 저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든 처음은 당연히 어렵고 첫 발을 떼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요식업에서 데뷔전을 치르고 나흘 째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수정과 보완이 있어야겠지요. 앞으로 준비한 모든 것들이 잘 작동되기를,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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