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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창업기

식당 창업_퇴사, 그리고 개업 후의 일상의 변화

by JCSPIRIT 2020.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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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식당을 개업하고 2주일 정도가 지나갔습니다. 난 앞으로 혼자서 일하겠노라, 더 이상 조직을 위해 일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퇴사를 하고 식당을 창업하고 나니 내 자신이 생각해도 지금까지의 흐름과 과정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한편 즐겁고 재미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첫 영업을 시작한 그 날에 아내가 퇴근하고 식당에 와서는 장부를 들여다보고 깔깔깔 크게 웃었습니다. 제가 앞치마를 두르고 모자를 쓰고 음식을 조리해서 장사를 하는 것도 웃긴데, 손님들에게 팔았던 내역을 보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모처럼 쉬는 날이었을 선거일에 형과 동생도 투표를 하고 제가 운영을 시작한 식당을 보겠다고 먼 길을 달려와 주었는데, 니가 식당을 한다니 실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고 갔습니다. 큰처남은 본인의 동서와 함께 와서 식사를 하고서는 아주 해맑게 요식업에서의 혁신이란 무엇일까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이 사람들에게는 제가 시작한 이 일이 마치 재미있는 잠깐의 소란이나 단발성 이슈 같습니다. 사실 마음 한 켠에는 걱정과 염려가 자리 잡고 있겠지요. 하지만, 다들 제가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사실, 그리고 많고 많은 업종 중에 전혀 경험도 없는 요식업을 택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심각한 표정을 지을 만도 한데 가족들이 이렇게 유쾌하게 받아들여주니 저도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지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직장을 다닐 때는 출근을 위해서 매일 아침 5시 40분에 일어났습니다. 간단한 요기를 하고 씻은 다음 한시간여 운전대를 잡고 사무실에 도착하였을 때 7시 30분 정도 되었죠. 그리고 집에 오면 이른 날은 오후 6시나 7시, 늦은 날은 새벽 1시 정도였는데, 평균적으로 대략 오후 9시-10시 정도였던 듯합니다. 이렇게 집에 오면 아내와 잠깐의 대화, 야식, 그리고 노트북을 켜고 급한 업무를 처리할 때도 있었고, TV 시청이나 웹서핑, 게임을 하다가 새벽 1-2시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 날이 시작되고요. 이렇다 보니 가족 행사 등의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에는 늘 늦잠 후에 극장, 외식과 낮잠과 휴식으로 점철되는 주말과 휴일을 보내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업무 생각이 여전히 가득 찬 상태로 말이지요. 물론 주말이나 휴일에 일을 하게 될 때도 있었고, 해외 출장을 갈 때 주말에 출국하거나 주말에 귀국해서 주말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일들도 더러 있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매일 아침 자고 일어나 식당으로 옵니다. 그리고서는 식당에서 생선을 재워둔다던가하는 일들을 처리해 둔 다음 농수산물 시장으로 가는데요, 처음 식당을 창업할 때의 다짐대로 생선을 매일 눈으로 보고 삽니다. 사실 아직 생선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척 보면 신선한지 아닌지 알아야 한다는데 이제 개업한 지 2주 된 사람이, 그전에 생선에 대해서 전혀 모르던 사람이 잘 알리가 없지요. 도매하시는 사장님께 괜히 '어제 생선은 별로던데요.', '이거 말고 저기 있는 거 주세요.'라는 식으로 일부러 초짜 티를 내지 않으려 아무 말이나 던지기도 합니다. 도매하시는 분들도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알 겁니다. 하지만, 사실 매일 눈도장을 찍고 믹스 커피도 같이 한 잔씩 하면서 인사하는 사람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선도가 떨어지는 것을 넘기기는 어려울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매일 간다는 것이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라 나중에 익숙해지면 2-3일에 한번 등으로 횟수를 줄여야겠지만, 당분간은 매일 갈 예정입니다.

 

- 매일 아침 농수산물시장에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생선을 구매합니다. -

 

현재까지의 추세로는 낮 두 시부터 네 시까지는 한가합니다. 이 시간에 주식 시장도 들여다보고, 데이터 정리도 하고, 웹서핑도 하고 게임도 합니다. 식사를 하기도 하고요. 나름의 휴식 시간인 셈입니다. 그리고 보통 네시에서 다섯 시 정도부터 저녁 손님들이 오시는데, 대부분 여섯 시 정도까지 집중이 되고, 그 이후에는 드문 드문 오시기 때문에 장비들을 청소하고 식자재를 점검하는 등 뒷정리를 병행합니다.

 

그리고 때늦은 저녁 식사 준비를 합니다. 매일 아내가 퇴근 후에 들르기 때문입니다. 풍성하게 식탁을 차리고 아내가 오면 함께 식사를 하는데, 아내가 매일 먹어도 맛있다고 합니다. 그러고서는 곧 대박이 나는거 아니냐고, 본인도 하는 일을 그만두고 식당에 합류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떱니다. 이렇게 식사를 마치고, 아내가 능숙한 칼질로 다음 날 사용할 채소들을 다듬어 줍니다. 몇 가지 찬들도 만들어주고요. 저도 정리정돈을 하여 내일의 영업을 준비해 둔 다음, 각자가 운전대를 잡고 귀가합니다. 예전에는 평일 저녁 식사는 따로 먹던 것이 일상이었는데, 매일 이렇게 아내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함께 집앞에서 귀가하는, 현재까지는 이렇게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회사와 업무에 매몰되어 있었던 그 시간들이 언제였는지 이제 아득합니다. 물론 아직 돈은 벌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Paterson)'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의 월요일부터 그다음 주 월요일까지 그의 삶을 그리는 영화입니다.

 

- Paterson, 2016, Jim Jarmusch -

이 영화에서 패터슨의 일상은 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어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새로운 변주들이 매일 있습니다. 패터슨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시를 씁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상은 예술이 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상이 곧 예술인 셈입니다.

 

'텅 빈 페이지는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공원에서 만난 일본인이 패터슨에게 노트를 선물하면서 한 대사입니다. 패터슨은 아마도 이후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그 노트에 시를 써내려갔겠죠.

 

저도 이제 단조롭지만, 특별한 그런 일상을 살아갑니다. 매일 아침 농수산물시장에 가서 생선과 채소들을 사 오고, 식당을 운영하고, 저녁에 아내와 저녁 식사를 하는 단조로운 일상, 하지만 지금 이 작은 식당의 구석진 자리에 걸터앉아 손님이 없는 시간에 블로그에 글을 쓰는 여유가 있는 그런 특별함이 있는 일상 말입니다. 저 같은 필부의 삶에도 패터슨의 시와 같은 것이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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