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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창업기

식당 창업_오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단상, 그 두번째.

by JCSPIRIT 2020.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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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포를 구하러 다닌 첫 날.

뜨거운 볕이 내리쬐던 2019년 여름,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당시 거의 밤낮으로 중요한 업무들을 처리하고 있던 시점이라 휴가를 내는 것도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는데, 회사나 상사, 동료에게 눈치가 보인 것이 아니라, 해야될 업무들이 산더미 같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촉박하여 마음 편히 하루도 쉴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휴가를 낸 이유는 집 인근 모 대학병원에 CT와 초음파 검사, 그리고 채혈 검사를 예약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건강상의 이유로 휴가를 낸 셈입니다. 그날 검사를 마치고 병원에서 나오면서, 막연하게 생각만 하던 창업을 실행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는데도 업무 걱정을 하는 그 상황이 무언가 저를 자극한 것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날 정말 뿌리칠 수 없는 강한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그날 무작정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돌려 인근의 상가와 부동산 중개업소를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상가의 임대료는 얼마나 할까, 가장 궁금한 부분부터 당장 짚어보기로 한 것입니다.

 

퇴사와 창업에 대한 막연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한 첫 날이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가고 싶을 때 가지 않으면 가려고 할 때는 갈 수가 없다.

If you don't go when you want to go, when you do go, you'll find you're gone.

2005년작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버트 먼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자신의 오토바이인 '인디언'을 타고 200마일을 주파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저 대사와 같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 The World's Fastest Indian (2005), Roger Donaldson -

 

그 첫 날에 부동산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이랄까,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날은 충동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생각해 둔 점포의 조건 같은 것도 당연히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간의 용기만 내면 그만이었습니다. 어느 부동산의 문을 밀고 들어가자 중개사분들로부터 상권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식당에 대해서 타당성 검토를 함께 하기도 하였습니다. 점포들도 추천 받았고요. 이렇게 한 곳, 두 곳 다니다 보니 어느새 생각이 정리가 되고,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감이 잡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무 시설이 없는 곳에도 바닥권리금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죠.

 

이렇게 첫 날을 시작하여 상가를 보러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니다 보면 보증금과 월세가 싸면 권리금이 비싸고, 보증금과 월세가 비싸면 권리금이 싼 점포들이 많습니다. 참 이상하게도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권리금이 일정 수준으로 균형이 맞춰져 있더군요. 누가 손대지 않아도 저렇게 조정이 되어가는 것이겠지요. 내가 보기에 좋은 조건이면 모두에게 좋은 조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보니 월세 저렴한 곳에 권리금 몇 천만원 주고 들어가기는 괜히 싫고, 권리금이 없어도 월세가 비싸면 이거 수익 내서 임대료 내면 남는게 있을까 싶고... 빈 점포에 시설 공사를 할 생각을 하면 비용이나 시간 측면에서 또 그거대로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이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러 점포를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 날, 그 순간 실행에 옮기지 않았더라면, 현재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요. 그 이후에 다시 식당이든 뭐든 시작하겠노라고 퇴사를 하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수도 있겠지요. 그 순간의 강한 충동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고, 현실에서 적당한 급여와 처우 수준으로 만족하면서 그렇게 비슷한 일상을 누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회사를 계속 다니지 않았을까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네요. 하지만, 회사를 다니다가 자의든 타의든 퇴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면 그 때는 과거를 되돌아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가고 싶을 때 가지 않았다면 가려고 할 때는 갈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지지와 응원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교육부에서 학원과 교습소에 대한 휴원 권고를 발표하였습니다. 졸지에 아내는 휴원을 하게 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 식당의 오픈 준비에 본격적으로 합류하였습니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휴원 기간 동안에는 저와 함께 매일을 식당 오픈 준비를 함께 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식당에서 일을 하면서 틈틈이 학생들 숙제를 채점하고 학습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주어야 했기 때문에 아내는 아주 바쁜 하루 하루를 보냈는데, 하지만 그 덕분에 홀과 주방이 빠른 속도로 세팅되기 시작하였고 어설픈 것들이 차츰 안정되어가기 시작하여서 대략적인 오픈 일정도 정하게 되었습니다.

 

- 졸지에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이케아에서 짐을 나르는 아내, 저 의자들의 조립에도 당연히 동원되었다. -

 

이렇듯, 아내는 제가 퇴사를 결정하였을 때도, 식당을 창업하기로 하였을 때도 여기에 대해서 별 말이 없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펄쩍 뛸 일일텐데 무던하게 반응합니다. 그냥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알려주고, 미흡해 보이는 부분이 있으면 상의합니다.

 

제가 퇴사를 하고, 식당을 창업한다고 하였을 때 여러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미쳤냐?'와 함께 가장 많이 들은 말 중에 하나가 '와이프는 뭐래?' '집에서 뭐래?' 입니다.

 

- 기적의 사과, 奇跡のリンゴ, (2013), Yoshihiro Nakamura -

 

기적의 사과라는 일본 영화가 있습니다. 사과농사에 사용하는 농약에 예민하고 약한 몸을 가진 아내를 위해 주인공 아키노리가 무농약으로 사과 재배를 시도하다가 큰 좌절과 역경을 겪고 나서 결국 맛있는데다가 썩지도 않는 사과를 만들어 낸다는 비교적 단조로운 패턴의 줄거리를 가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보면 모두의 상식을 뒤집는 도전에 대한 대가는 정말 혹독합니다. 농약을 쓰지 않으면서 사과 밭에 벌레가 들끓고 병이 들어 사과나무들이 누렇게 말라 죽어갑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사과 농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가세는 크게 기울어갑니다. 하지만, 가족 중에 그 어느 누구도 아키노리를 원망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가족의 무언의 지지 메세지는 주인공에게 버팀목이 되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일 겁니다.

 

주변의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서슴지 않고 합니다. 게다가 식당의 메뉴나 컨셉에 대해서 별별 오지랖도 경험하게 되는 요즘인데, 정작 가장 가까운 아내처럼 형제들은 별다른 걱정도, 특별한 말도 없습니다. 네 생각이 그러면 그게 맞겠지,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듯이 반응합니다. 더 궁금하고 더 걱정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두는 것이겠지요. 그냥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할 뿐입니다. 그리고, 내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면 그저 도움을 건네는 겁니다.

 

가까운 사람들의 그런 지지와 응원의 메세지가 어깨에 힘을 빼고 가벼운 걸음으로 전진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 같습니다.


현재 닥치고 있는 모든 일이 살면서 처음 겪는 일들이고, 결정을 최대한 신속하게 해서, 빨리 처리해 나가야 하는 일들의 연속입니다. 익숙하지 않을 뿐 회사를 다닐 때와 별반 다를 것도 없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짜서 열심히 실행에 옮기는 것입니다. 중간 중간 시행착오도 겪고 계획이 수정되고, 일정이 변경됩니다. 하지만 미지의 영역을 정복해 나가는 것처럼 나름의 희열이 있습니다.

 

제 자신의 생각과 감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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